제품을 만들었고, 이름도 잘 지었다. 이 정도면 시장이 있다는 것도 검증되었다. 중요한 관문이 남았다. 자, 얼마를 받을 것인가? 보통 세 가지 방법을 쓰게 된다.

  • 비용+마진 접근법
  • 경쟁 기준 접근법
  • 사용자 가치 접근법

테크 인더스트리에서는 비용+마진 접근법은 그다지 많이 쓰이지는 않는데, 소프트웨어에서 비용 산정이 애매한 면이 있고, 추후 업사이드가 클 것이라 보고 투자금을 기반으로 당장의 비용을 커버하기 보다 시장 점유를 늘려가는 방식을 많이 취하기 때문이다. 단, 하드웨어를 개발하거나, 손에 잡히는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예: 플레이팅)는 다를 수 있다.

경쟁 기준 접근법은 가장 쓰기 쉬운 방법이다. 가격을 설정하면서 설문을 돌리거나 구매자들을 인터뷰 해 볼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을 때, 결국 경쟁에 기반한 가격 책정을 하게 된다(네네… 저만 그랬을지도요 ㅠㅠ). ‘쟤들이 월 3만9천원 받으니, 우리는 2만9천원 하자’는 식의 대화가 흔했다. 경쟁 카테고리가 좀 더 넓을 수는 있다. 조이의 워크인사이트는 월 사용료를 산정할 때, 매장주들이 사용하는 시큐리티 솔루션 가격 등을 참고해서 비슷한 범위 내에서 가격을 책정했다.

션 앨리스는 사용자 가치 접근법을 이야기하며 설문 조사에서 출발하라고 권유한다. ‘가격이 어느 정도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구매를 고려하지 않게 될지 / 비싸긴 해도 구매를 고려하게 될지 / 적절한 거래라고 생각할지 / 너무 싸서 품질을 의심할지’와 같은 항목으로 나누어 심리적 저항선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리 탐색하라는 것이다. 이런 설문조사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적어도 어느 범위 안에서 가격을 설정하고 실험해봐야 할 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번 글을 통해 사용자 가치 접근법을 토대로 가격을 설정할 때 따라야 할 프로세스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가치 있는 곳에 가격 있다

사용자 가치 접근법을 쓰기 위해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용자가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 제품이 제공하는 기능의 목록을 만들고, 그 중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기능과, 반대로 가치를 못 느낀다고 생각하는 생각하는 기능을 묻는다. 이런 자기 기입식 설문방법 외에도 이미 제품이 활발하게 쓰이고 있고, 사용자가 많이 쓰는 기능에 관한 웹이나 모바일의 데이터가 있다면 이 데이터를 들여다 볼 수도 있다.

설문 또는 기존 데이터를 토대로, 패트릭 캠벨이 이야기한 Persona – Pricing Fit을 알아본다. (션 앨리스의 Hacking Growth에서도 모네타이제이션 챕터는 패트릭 캠벨을 거의 복붙하다시피 하고 있다. ) 구매자 퍼소나를 정의할 때 막연히 이럴 거라는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면 곤란하다. 퍼소나 별로 가치를 느끼는 기능과 가치를 못 느끼는 기능,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대, 획득 비용, 생애 가치 등을 계량화 해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략 아래와 같은 표를 작성하게 될 것이다. 구매자 퍼소나와 가격의 적합도를 찾는 것은 전통적인 마케팅 용어를 사용하면 세그먼테이션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고, 추후 가격 테이블을 만드는 기초가 된다.

고객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 때 이상적으로는 고객이 느끼는 가치와 가격은 비례해야 하며, 가격은 위에 언급한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를 기본으로 구성된다. 이를 캠벨은 가치측정지표(value metrics)라고 부르며, 보통 기능당 과금의 형태로 구현된다.

가격은 거래 단위에도 영향을 받는다. 단위는 사용한 시간일 수도, 데이터 포인트 일 수도, 사용자 수 일 수도 있으며, 거래되는 아이템 갯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가치측정지표와 거래 단위를 조합해서 가격 테이블과 티어를 만들고, 최적의 선택지를 찾아나가는 실험을 계속하게 된다. 예를 들어 컨텐트를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면, 아이튠즈 영화처럼 아이템 당 과금할 지, 넷플릭스처럼 시간당 과금 + 동시에 플레이할 수 있는 스크린수( ≒ 사용자수)를 조합해서 과금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어떻게 과금할 지 결정했다. 언제 받을 것인가?

언제 받을까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우리가 제공한 가치가 우리가 제시하는 가격으로 언제 교환되는지, 그 시점 또한 중요하지만 가격 그 자체에 비해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교환 시점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1) 선불, 2) 후불, 3) 받았다 돌려주기, 4) 줬다 뺏기.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선/후불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거래에서 언제 돈이 오고 가는가는 관행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큰 고민없이 이를 따르게 된다. 그로스 팀은 이 관행을 깼을 때 어떤 이득이 있는지 질문해보고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

  • 선불을 후불로

사교육비나 대학 등록금, 퍼스널 트레이닝, 온/오프라인 강의 등 교육 분야의 경우 선불이 관행이다. 컴퓨터 사이언스와 AI/머신러닝 코스를 제공하는 Lambda School의 경우, 이 관행을 깨고 후불로 프라이싱을 했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가 되었다. 또한 졸업생이 5만불 이상의 잡 오퍼를 받은 경우에만 가격을 지불하도록 디자인했다. 내 경우에도 다양한 옵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Lambda School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 후불제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만약 패스트캠퍼스 스쿨 같은 곳이 후불제로 교육 코스를 제공하면서, 잡 오퍼를 받은 경우에만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면 그로스 팀의 고민이 얼마나 줄어들까 상상해 본다. 대신 취업 지원 관련된 포지션의 고민은 늘어날테니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일 수도 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도 해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도 해봅시다

  • 후불을 선불로

한국에서 광고비는 대부분 월 단위 후불이다. 소셜 광고 서비스를 제공했던(과거형입니다…) 애드바이미의 경우, 산업이 광고비를 후불로 지불하는 관행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 초기에는 선불 결제를 기본으로 했다. 전략적인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그 현금 흐름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고비는 선불 충전 해주셔야 합니다, 를 광고주님에게 읊어야 할 때, 전화선 혹은 테이블 너머로 느껴지는 얘네 뭐야, 하는 공기감을 선명히 기억한다. 갑을병정 중에 정에도 못 낄 거 같은 애들이 어음도 아니고 100일 후 지급도 아니고 선불을 달라는 거냐 지금. 좀 더 사업이 검증된 후, 특정 어카운트는 후불 결제가 가능하도록 결제 방식을 바꾸면서 건당 거래액의 자리 수가 바뀌었던 기억이 있다.

비슷하게 SaaS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선불이지만, AWS나 Azure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는 사용한 만큼 나중에 지불하는 후불 옵션(pay-as-you-go)이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선을 낮춰 주었다. (반대 급부로는 설정 잘못해서 요금 폭탄 맞았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는 구구절절한 사연 1, 2, 3을 만들어 주기도)

  • 받았다 돌려주기(Payback)

받았다 돌려주기는 보통 환급 또는 페이백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환급 프로그램은 주로 토익/토플 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EBS 토목달이 대표적. ‘수강료 100% 현금 환급’이라니 얼마나 직접적인가. 환급점수가 10점을 넘으면 1천원부터 2만원, 4만원, 50%, 100% 환급 등으로 단계별 환급금이 적용된다고 되어 있다. 즉 환급에 관한 레벨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이야기다.

페이백 프로그램은 여러 이득이 있다. 결제 고객을 늘리는 것 뿐 아니라 환급을 위해 특정 목표까지 이행하는 사용자를 늘릴 수 있으므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해 두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다른 어학 관련 페이백 프로그램을 보면, 출석 체크를 모바일이 아닌 PC(당연히 맥은 안되시고…)에서만 가능하도록 하는 등 가능하면 환급에 실패하도록 만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팀블로그를 같이 쓰는 멤버들이 속한 눔에도 환급 프로그램이 있다. 멤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환급 프로그램의 또 다른 이득은 리퍼럴에 있다고 한다. 성공한 고객들은 계좌에 꽂히는 돈을 보고 만족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에서 주변에 적극적으로 소문을 내 주기 때문에 초기에 오가닉 컨텐츠를 쌓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특히 우리 사업이 교육 카테고리에 속해 있고 초기 시드 역할을 할 컨텐트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시도해 보면 좋을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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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줬다 뺏기… 까지는 아니고 회수하기 (Try-on)

줬다 회수하기는 Stitch Fix, Warby Parker, Vrai & Oro 등 패션 관련된 아이템을 다루는 기업들이 많이 사용한다. 간단한 설문을 통해 취향이나 사이즈 같은 정보를 받은 후, 이 조건에 맞는 제품을 여러 개 보내준다. 집에서 입어보고, 써보고, 신어보고, 끼워본 후 (try에 관해 쓸 수 있는 한국어 동사가 너무 많구나요!) 마음에 드는 제품만 거둔 후(?) 결제하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는 모델. 하지만 견물생심이라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받고 나면 이미 내 품에 들어온 아이들을 죄다 내치는 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이 시착 모델만을 떼어내서 사업화 한 기업도 생겼는데, Try는 월 2.99불의 회원비를 내면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어떤 의류도 try-on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try-on모델은 온라인 커머스 경험을 보완하기 위해 쓰인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경험해보고 구매하는 느낌에 가깝도록 디자인 하는 것이다. 또한 이미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심리 때문에 잘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가 말한 ‘소유효과(endowment effect)’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된 가치보다 더 높게 잡는 현상을 말한다.

탈러는 실험에서 수강생들 중 일부에게 랜덤으로 학교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을 주었다.컵을 받은 학생들에게 최소한 얼마를 받아야 팔 용의가 있는지 적어내게 하고, 컵을 받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가격이 얼마면 살지를 물었다. 컵을 받은 학생들은 평균 5.25달러를 써낸 반면, 못 받은 학생들이 써낸 가격은 평균 2.75달러였다. 같은 컵인데 매긴 가격이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단 소유효과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한 애착이나 집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내 수중에 들어온 제품을 남에게 넘기는 걸 손실로 느껴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손실회피: loss aversion)에서 발생한다.

모네타이제이션 관련 고민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우리는 보통 퍼널 상단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 다시 패트릭 캠벨에 따르면, 2014-2015년 사이에 쓰여진 그로스 관련 블로그 글들을 수집해 본 결과, 전체 글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acquisition 관련 글이었으며, retention이 그 다음이었고, monetization 관련 글은 가장 적었다고 한다.

하지만 512개의 기업 사례를 통해 실제 그로스에 어떤 레버가 영향을 많이 미쳤는지를 살펴보면, 결과는 우리 손이 가는 순위와는 반대였다고. 물론 캠벨이 프라이싱에 관련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이 아저씨는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충분한 동인이 있다는 건 감안하고 듣자. 하지만 우리가 유난히 어떤 질문이나 실험을 더 자주하고 있을 때, 가끔 이 우선 순위가 맞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결론은, 모네타이제이션 이야기도 더 자주하자는 것. 얼마를, 언제 받으면 되나는 아주 중요한 질문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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